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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 유승호'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9.14 선덕여왕 김춘추(유승호)에 대하여...
선덕여왕이야기2009.09.1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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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김춘추의 활약을 기대가 되네요...ㅎㅎ

선덕여왕 34회의 끝부분 내일 방송 예고편에서 잠깐 얼굴을 비추면서 등장을 예고했네요~

백제를 멸망시켜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한 신라 제29대 왕.

진지왕의 손자로 이찬(伊飡) 용춘(龍春, 혹은 龍樹)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천명부인(天明夫人)으로 진평왕의 딸이다.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보필하여 관등이 이찬에 이르렀다.

642년(선덕왕 11년)에 대야성이 백제에게 함락되면서 사위인 김품석(金品釋)과 딸이 죽자 김춘추는 백제에 원한을 갚기 위해 본격적으로 외교활동에 뛰어들었다. 처음에 김춘추가 외교 협상을 벌이려 한 것은 고구려였다. 그러나 당시 고구려의 집권자인 연개소문은 진흥왕 때 신라가 고구려로부터 공취한 한강 상류유역의 영토 반환을 요구하면서 오히려 김춘추를 억류하였다. 겨우 고구려를 탈출한 김춘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번에는 당나라로 건너가 외교적 협상을 벌였다. 김춘춘의 활약 덕분에 마침내 당태종은 백제 공격시 군사적 지원을 약속하였다.

654년 진덕여왕이 죽자 진골 신분으로 군신들의 추대를 받아 제29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구서당(九誓幢)이라는 9개 군단(軍團)의 설치로 군사조직을 강화하는 한편 아들인 김인문과 김문왕 등을 당나라에 보내 군사적인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처럼 외교적으로는 적극적인 친당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고구려·백제와의 전쟁을 위한 군사적인 준비를 하였다.
655년(무열왕 2)에 고구려가 백제·말갈과 연합하여 신라 북경지방의 33성을 공취하자 신라는 당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였고, 이에 당나라의 정명진(程名振)과 소정방(蘇定方)의 군사가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또한 659년에는 백제가 자주 신라의 변경지방을 침범하자 당나라에 군사를 요청하여 본격적인 백제 정벌을 착수하였다.

660년 마침내 당나라에서 소정방에게 13만명의 군사를 주어 백제로 보내자 무열왕은 태자 법민과 유신·진주·천존 등과 더불어 친히 정병 5만명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나당연합군의 협공에 사비성이 함락되고 이어서 웅진성으로 피난하였던 의자왕과 왕자 부여 융이 항복함으로써 마침내 백제는 멸망하였다. 11월에 백제로부터 귀환한 무열왕은 백제 정벌에서 전사한 자들과 전공을 세운 자들에게 상을 차등 있게 내려 주었다. 또한 항복해 온 백제의 관료들에게도 능력에 따라 신라의 관등을 주어 관직에 임명하였다. 이듬해 백제의 남은 적들이 사비성을 공격하자 신라군을 파견하는 한편, 말갈과 함께 신라를 침범하는 고구려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힘썼다.

고구려 정복은 다음 문무왕대로 넘어갔지만 태종 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Posted by FeelStory